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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무서운 일을 겪은 뒤로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신 적 있으신가요. 사고를 직접 당하지 않았는데도 뉴스를 본 날 밤에 잠을 못 자는 아이도 있습니다. 오늘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가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부모가 그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정리했습니다.
Q. 우리 아이가 겪은 일도 트라우마일까요?
교통사고를 목격한 아이가 그날 이후 차에 타기를 무서워합니다. 병원에서 큰 처치를 받은 아이가 흰 가운만 봐도 웁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는데 밤마다 같은 꿈을 꾼다고 합니다. 부모는 인터넷에서 'PTSD 증상'을 검색해 보고, 목록을 읽을수록 더 불안해집니다.
그 검색창 앞에 앉아 본 밤이 있으셨을 겁니다. 그 마음이 어떤지 압니다.
그런데 이 순간 대부분 이렇게 하십니다. 첫째, 목록과 아이를 대조해 스스로 진단을 내립니다. 증상 목록은 누구에게나 몇 개쯤 맞아서, 읽다 보면 확신이 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둘째, 반대로 서둘러 안심합니다 — "저 정도면 괜찮은 거겠지". 셋째, 아이에게 확인하려 듭니다 — "너 혹시 그때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이는 자기도 모르는 것을 대답해야 해서 입을 닫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할 일은 진단이 아닙니다. 트라우마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은 전문가의 일이고, 그 판단에는 시간과 면담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보다 앞에 있습니다. 무엇이 언제부터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적어 두는 것입니다. 잠드는 시간, 깨는 횟수, 밥 먹는 양, 하지 않던 행동, 하던 것을 그만둔 것. 이 기록은 나중에 전문기관에 갔을 때 가장 쓸모 있는 자료가 됩니다. 판단은 미루고 관찰은 시작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할 일입니다.
Q. 큰 사고가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오래갈까요?
"그렇게 큰일도 아니었는데 왜 아직도 저래"라는 말이 부모 입에서 먼저 나옵니다. 넘어져서 다친 정도였는데 몇 달째 그 놀이터를 피합니다. 친구와 다툰 일로 학교를 가기 싫어합니다. 어른 눈에는 작아 보이는 일이 아이에게는 크게 남아 있습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합니다.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남은 것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이 순간 대부분 이렇게 하십니다. 첫째, 크기를 비교합니다 — "친구는 더 큰 일도 겪었는데". 아이는 자기 반응이 잘못된 것이라고 배웁니다. 둘째, 빨리 넘기려 합니다 — "이제 그만 잊어버려". 잊으라는 말은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말할 자리만 없앱니다. 셋째, 반대로 계속 확인합니다 — "아직도 무서워? 지금은 어때?". 물을 때마다 아이는 그 장면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그 사람이 받은 충격의 크기로 남습니다. 원문에서도 같은 점을 짚었습니다 — 개인마다 느끼는 강도가 달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 두실 것이 있습니다. 직접 겪지 않아도 영상이나 기사로 그 일을 간접적으로 접한 것만으로 비슷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고, 사건을 겪은 사람의 가족에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뉴스를 본 날 잠을 설쳤다면, 그것은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반응입니다.
Q. 아이가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가 불쑥 그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대개는 밤에, 불을 끄고 누운 다음입니다. 부모는 심장이 내려앉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이제 괜찮아, 다 지났어"라고 말하고 서둘러 재웁니다. 다음 날 아이는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정확한 말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어른도 준비되지 않은 채로 그 이야기를 맞게 됩니다.
그런데 이 순간 대부분 이렇게 하십니다. 첫째, 서둘러 덮습니다 — "괜찮아, 다 끝났어". 아이는 이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구나로 받아들입니다. 둘째, 자세히 캐묻습니다 — "그래서 그다음엔? 걔가 뭐라고 했어?". 부모는 알아야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그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겪습니다. 셋째, 감정을 대신 정해 줍니다 — "무서웠겠다, 얼마나 놀랐어". 아이가 느낀 것이 화였다면 그 말은 빗나갑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부모가 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말하는 동안 옆에 있어 주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아이가 멈추면 기다리고, 말이 끊기면 "그랬구나" 정도로 받아 주십시오. 캐묻지 않아도 아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꺼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반복되거나, 말한 뒤에 아이가 더 힘들어 보이면 그때는 부모가 혼자 감당할 일이 아닙니다. 아래의 신호를 함께 보시고 전문기관과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이런 신호가 보이면 전문기관과 상의하십시오
아래는 진단 기준이 아니라 상의를 시작할 시점을 알려 주는 신호입니다. 해당한다고 해서 병이라는 뜻이 아니고, 해당하지 않는다고 괜찮다는 뜻도 아닙니다. 판단은 전문가에게 맡기시고, 부모는 관찰한 것을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 잠들기 어려워하거나 밤에 자주 깨는 일이 몇 주 이상 이어질 때
·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고 말할 때
· 그 일과 관련된 장소·사람·물건을 피하려고 일상이 좁아질 때
· 작은 소리에도 크게 놀라거나 늘 긴장해 있을 때
·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방금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할 때
·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뛰며 어쩔 줄 몰라 할 때
· 먹는 것과 자는 것, 기분에 뚜렷한 변화가 함께 보일 때
· 아이가 "없어지고 싶다", "죽고 싶다" 같은 말을 할 때 — 이때는 즉시입니다
가까운 창구는 학교의 위(Wee) 클래스, 지역 위(Wee) 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그리고 각 시·도의 트라우마 관련 지원 기관입니다. 원문에서 소개한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처럼 트라우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공기관도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면 학교 상담 선생님께 먼저 여쭤보시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용어가 어렵게 느껴지실 때
자료를 찾다 보면 낯선 말이 많습니다. 아이에게 보이는 모습과 짝지어 두면 읽기가 조금 수월합니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 생명을 위협할 만큼 충격적인 일을 겪은 뒤에 나타나는 반응이 오래 이어지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 급성 스트레스 장애 — 충격적인 일을 겪거나 목격한 직후, 일시적으로 강한 공포감이 밀려오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 애도 반응 — 가까운 사람이나 아끼던 반려동물을 잃은 뒤에 오는 반응입니다. 아이가 키우던 동물이 죽은 뒤 한동안 밥을 잘 못 먹는 것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 재난형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 전쟁·자연재해처럼 큰 재난을 겪은 뒤의 경우를 가리킵니다.
· 해리 — 그 순간의 기억이 뚝 끊기거나, 멍하니 자기 몸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고 말하는 모습입니다.
· 공황발작 — 갑자기 숨이 막히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곧 큰일이 날 것 같은 공포가 몰려오는 것입니다.
· 악몽·불면 — 밤에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거나, 잠들기까지 오래 걸리고 자주 깨는 것입니다.
참고로 원문에 인용된 통계는 지난 자료입니다. 2012년 경찰청 통계 기준으로 전체 범죄피해자 중 약 90%가 여성, 그중 70%가량이 20~30대였다는 내용입니다. 수치 자체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크고 작은 사건에 노출돼 있다는 뜻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이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기다리되 문은 열어 두시길 권합니다. "그 얘기 하고 싶어지면 언제든 해도 돼"라고 한 번 말해 두시고, 그다음부터는 먼저 묻지 않는 것입니다.
Q. 그 일을 다시 떠올리게 하면 안 되나요? 일부러 꺼내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아이가 스스로 꺼낼 때 막지는 마십시오. 어떻게 다룰지는 전문가와 상의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맘맘톡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코로나19도 모두 재난에 속합니다. 이 재난을 겪은 사람에게 트라우마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영상이나 기사로 간접적으로 접한 사람, 그리고 그 가족에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저는 행정안전부에서 진행하는 재난형 트라우마 척도 개발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트라우마 관련 연구 자료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몸에 난 상처는 서둘러 치료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에는 반응이 느린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늘고 있지만 어른이 알아차리지 못해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에는 어른과 부모, 그리고 교사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부모님께는 한 가지를 더 전하고 싶습니다. 트라우마에 관한 글을 읽는 부모는 거의 예외 없이 자책합니다. 그때 내가 아이를 그 자리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하고 되짚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일어난 일과 부모의 사랑은 별개의 일입니다. 알아차리지 못한 시간이 있었다고 해서 그 사랑이 없었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늘 이 글을 찾아 읽고 계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이 곁에 서 계시다는 뜻입니다. 지금부터 관찰을 시작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혼자 감당하지 마십시오. 전문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부모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필요한 사람을 한 명 더 데려오는 일입니다. 오늘도 가치코칭하시는 부모님들 힘내세요.
아래의 추천도서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어린이를 다룬 내용입니다. 저는 자녀들에게 트라우마가 무엇이며 어떻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이 책으로 전달하였습니다. 트라우마와 관련해 존 보울비의 애착이론도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애착은 사람에게 참 중요한 부분이어서, 조금 더 깊이 다루어 별도의 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정서중심심리코칭의 일반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한 실전 가이드이며, 특정 아동의 상태를 진단하거나 치료 방법을 안내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상태가 지속적으로 걱정되신다면 전문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트라우마 관련 정보를 읽으며 참고 자료를 정리할 때 사용할 도구를 모아 두었습니다. 쿠팡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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