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프로이트"라는 이름은 아마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아들러"나 "융"이라는 이름도 함께 들어 보셨다면, 이 두 사람이 원래 프로이트와 같은 자리에서 시작했다가 갈라져 나갔다는 사실은 모르셨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심리코칭 시리즈 다섯 번째 편으로, 정신분석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던 학자들이 어떻게 갈라져 나갔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름이 갈라졌다는 것은 생각도 갈라졌다는 뜻입니다. 같은 질문("사람의 마음은 왜 이렇게 움직이는가")에서 출발했지만, 답을 찾아간 길이 저마다 달랐습니다. 그 갈림길을 알면 오늘날 쓰이는 여러 상담·코칭 용어들이 어느 집안에서 나왔는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오늘은 그 가족 나무를 뿌리부터 가지까지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Q. 정신분석은 누가, 어떻게 시작했나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사람의 마음에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이 있고, 그 무의식이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았습니다. 프로이트는 1914년에 쓴 「정신분석 운동의 역사」에서 그 시작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1902년부터 몇몇 젊은 의사들이 정신분석을 배우고, 실천하고, 널리 알리겠다는 뜻을 품고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정해진 저녁마다 내 집에서 만나 일정한 규칙에 따라 주제를 토론했다."
런던 프로이트 박물관이 소개하는 기록을 보면, 프로이트는 아들러에게도 "함께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초대 편지를 보냈습니다. 수요일마다 모이던 이 모임이 커지자 1908년 프로이트는 비공식 모임을 해산하고 비엔나정신분석학회로 다시 꾸렸습니다. 이때 새 회원을 프로이트의 초대가 아니라 비밀투표로 뽑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아들러였습니다. 그리고 1910년 뉘른베르크 대회에서 국제정신분석학회가 만들어질 때, 국제 학회 회장으로는 융이 뽑혔고 프로이트는 비엔나 지부의 회장 자리를 아들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프로이트 자신이 그렇게 적었습니다.
프로이트가 발전시킨 방법 중 하나가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입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검열하지 않고 그대로 말하게 하면, 평소에는 가려져 있던 마음의 흐름이 드러난다고 본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최면을 버리고 자유연상을 들여온 때를 정신분석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소개합니다. 흔히 함께 이야기되는 "말하는 치료(talking cure)"라는 이름은 그보다 먼저, 동료 의사 브로이어의 환자가 자신이 받던 치료에 직접 붙인 이름이라고 프로이트가 1910년 강연록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 환자는 농담 삼아 "굴뚝 청소"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Q. 아들러는 왜, 어떻게 갈라져 나갔나요
그런데 1911년, 아들러는 프로이트 쪽과 함께 내던 학술지의 편집에서 물러났고 곧 비엔나 학회도 떠났습니다. 프로이트는 "아들러 쪽의 이탈은 1911년 바이마르 대회 전에 이미 끝나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인간을 성적 충동보다는 열등감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노력, 그리고 사회 속의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는 아들러의 생각이, 성적 충동을 중심에 둔 프로이트의 생각과 점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의 기록에는 아들러가 학회 회원 몇 사람 앞에서 "평생 당신의 그늘 아래 서 있는 게 내게 그렇게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말했다는 장면도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갈라선 두 사람 가운데 한쪽, 프로이트의 눈으로 남은 기록입니다.
아들러가 처음 세운 모임의 이름은 "자유정신분석학회"였습니다. 그 뒤 아들러는 정신분석과의 연결을 끊고 자기 가르침을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이라 불렀습니다. 1912년에 나온 그의 책 『신경증적 성격에 대하여』의 부제에 이미 '개인심리학'이라는 말이 들어 있고, 1914년에는 『개인심리학 잡지』가 나옵니다. 프로이트는 이 결별을 두고 "하나님의 땅에는 자리가 넉넉하다… 서로를 더는 이해하지 못하고 함께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 계속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썼습니다. 한 학회에서 일어난 첫 번째 큰 갈림이었습니다.
개인심리학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들러의 관점을 보여 줍니다. 아들러는 『인간 이해(Understanding Human Nature)』에서,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는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전체"의 부분으로 볼 때에만 제대로 이해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삶에서 느끼는 열등감을 어떻게 다루고, 사회 속에서 어떤 자리를 찾아가는지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아들러는 열등감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았습니다. 같은 책에서 그는 아이의 약하고 무력한 처지를 보면 모든 삶의 시작에는 크든 작든 열등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면서, "이 열등감이 원동력이며, 아이의 모든 노력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라고 썼습니다. 책에는 "열등감을 보상하기"라는 절이 따로 있습니다. 다만 그는 열등감이 지나치게 커져 풀리지 않거나, 목표가 남을 누르고 지배하는 쪽으로 기울면 아이가 배우고 자라는 힘이 꺾일 수 있다고도 경고했습니다. 열등감은 없애야 할 결점이라기보다, 어느 방향으로 쓰이느냐가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 인물 | 이탈·창설 시기 |
|---|---|
| 지그문트 프로이트 | 1902년 수요 모임·1908년 학회 재구성 |
| 알프레드 아들러 | 1911년 이탈 |
| 칼 융 | 1913년 결별(뮌헨 대회) |
| 에릭 에릭슨 | 1950년 『Childhood and Society』(정신분석 안에 남음) |
Q. 융은 또 어떤 다른 길로 갔나요
칼 융(Carl Jung, 1875~1961)은 한때 프로이트가 후계자로 점찍은 사람이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운동의 역사」에서, 1910년 무렵 자신의 권위를 "내가 죽은 뒤 자연스럽게 내 자리를 이어받을 젊은 사람"에게 넘기고 싶었고 "그 사람은 융밖에 없다고 느꼈다"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융은 그해 국제정신분석학회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12년 즈음부터 긴장이 커졌습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융은 1912년 미국에서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정신분석을 고쳐 많은 사람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렸다고 자랑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어렵게 얻은 진실을 많이 내려놓을수록 거부감은 줄어드는 법이니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1913년 9월 뮌헨 대회는 융이 사회를 보았는데, 프로이트는 그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적습니다. "우리는 다시 만날 필요를 느끼지 않은 채 서로 작별했다." 프로이트와 다른 길을 택한 두 번째 큰 갈림이었습니다.
융이 세운 분석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은 개인의 무의식 아래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더 깊은 층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1917년 영어로 묶여 나온 『분석심리학 논문집』에서 융은 무의식을 "개인적 무의식"과 "비개인적·초개인적 무의식"으로 나누고, 뒤의 것을 "집단적 무의식"이라 부르며 그 내용은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썼습니다. 그 깊은 층에 잠들어 있는 것을 그는 "원초적 이미지(primordial images)"라 부르며,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생각이자 사람들이 신과 악마의 모습을 길어 올린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흔히 듣는 '원형(archetype)'이라는 말은 이 책에는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같은 책 서문에서 융은 프로이트의 이론은 "쾌락"의 원리에, 아들러의 이론은 "힘"의 원리에 서 있다고 정리합니다. 두 원리는 모든 사람 안에 함께 있되 비율이 다를 뿐이니, 두 관점 모두 한쪽에 치우쳤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개인의 과거, 특히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 집중했다면, 융은 꿈이나 상상 속 상징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보아 시선을 넓혔습니다.
Q. 그 뒤 계보는 어떻게 이어졌나요
정신분석의 계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만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아들러나 융과 달리 프로이트에게서 떨어져 나간 사람이 아니라, 정신분석 안에 남아 그 폭을 넓힌 사람입니다. 그는 1950년에 낸 『아동기와 사회(Childhood and Society)』 머리말에서, 비엔나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처음 만났고 아동 분석가로 일을 시작할 때 안나 프로이트와 아우구스트 아이히호른의 지도를 받았으며 비엔나 정신분석연구소를 졸업했다고 밝힙니다. 하버드대 교수회의 추모 기록도 그가 안나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을 받으며 아동 분석가 수련을 시작했고, 1933년 연구소의 정회원이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 '갈라져 나간 사람'이라기보다는 같은 집 안에서 새 방을 낸 사람에 가깝습니다.
에릭슨은 이 책의 한 장을 "인간의 여덟 단계"에 할애했습니다. 신뢰 대 불신, 자율성 대 수치심과 의심, 주도성 대 죄책감, 근면성 대 열등감, 정체성 대 역할 혼미, 친밀감 대 고립, 생산성 대 침체, 자아통합 대 절망입니다. 하버드 추모 기록은 이 가운데 앞의 다섯 단계가 프로이트가 제시한 단계와 대응하고, 청년기·성인기·성숙기의 세 단계를 에릭슨이 더했다고 설명합니다. 정신분석의 관심을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나"에서 "평생에 걸쳐 어떤 과제를 지나가는가"로 넓힌 것입니다. 그렇게 읽으면 부모도 지금 자기 삶의 단계에서 저마다의 과제를 조용히 지나고 있는 셈입니다.
첫 단계인 "신뢰 대 불신"에 대해 에릭슨은, 아기가 사회적 신뢰를 처음 보여 주는 모습을 편하게 먹고 깊이 자는 데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져도 지나친 불안이나 분노 없이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을 아기의 "첫 번째 사회적 성취"라 불렀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아이가 얻는 신뢰가 먹을 것이나 사랑 표현의 "절대적인 양"보다 엄마와의 관계의 "질"에 달려 있는 것 같다고 그가 덧붙인 부분입니다. 아이 하나하나의 필요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돌봄과,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꾸준함이 함께 있을 때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정신분석"이라는 한 뿌리에서 개인심리학과 분석심리학이 갈라져 나가고, 그 안에서는 에릭슨처럼 자아의 발달과 생애 전체로 시선을 넓힌 흐름(흔히 자아심리학이라 부릅니다)이 자랐습니다. 서로 생각이 달라 갈라섰지만, "마음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층이 있다"는 문제의식만은 적어도 출발점에서 함께 나눴습니다. 다만 프로이트는 아들러가 끝내 어떤 생각이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상관없다는 입장에 이르렀다고 비판했으니, 그 공유가 끝까지 같은 모양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Q. 네 사람의 눈으로 오늘 우리 아이를 보면
이론을 외우는 것보다, 각 학자가 던진 질문 하나씩을 빌려 와 집에서 아이를 바라볼 때 써 보는 편이 쓸모가 있습니다. 아래는 그 질문을 부모의 말로 옮겨 본 예시입니다. 아이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정답이라기보다 한 가지 관점으로 봐 주세요.
① 프로이트의 질문 — "이 행동 밑에 아이도 모르는 마음이 있을까?" 동생이 태어난 뒤 장난감을 자꾸 던지는 아이에게 "왜 그랬어?"를 다그치기보다, "요즘 엄마가 동생을 많이 안고 있어서 마음이 이상했을까?" 하고 짐작을 건네 봅니다. 아이가 "아니야!" 해도 괜찮습니다. 짐작은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그런 마음도 말로 꺼내도 된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② 아들러의 질문 — "이 아이는 어떤 열등감을 어느 방향으로 메우려 하고 있을까?" 받아쓰기를 망치고 "나는 원래 바보야" 하는 아이에게 "다음엔 백 점 받자"보다 "어떤 단어가 제일 헷갈렸어? 그 단어만 같이 다시 써 볼까?"라고 말해 봅니다. 작은 노력이 쓸모 있는 쪽으로 이어지게 돕고, 아들러가 경고했듯 목표가 '친구보다 위'로만 기울지 않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③ 융의 질문 — "아이의 꿈과 놀이 속 이미지는 무엇을 말하려 할까?" 괴물 꿈을 꾸었다는 아이에게 "그건 가짜야"로 끝내기보다 "그 괴물은 어떻게 생겼어? 괴물이 뭘 원했던 것 같아?"라고 물어 줍니다. 부모가 해석을 내려 주려 하지 않고,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하게 두는 것이 이 질문의 핵심입니다.
④ 에릭슨의 질문 — "지금 이 아이가 지나는 단계의 과제는 무엇일까?" 신발을 혼자 신겠다고 "내가! 내가!" 버티는 아이를 고집으로만 보지 않고, 에릭슨이 말한 '자율성 대 수치심과 의심'의 과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스스로 고르는 경험을 "조금씩, 잘 안내받으며" 하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려도 괜찮아. 엄마는 여기서 기다릴게. 오른쪽 발부터 해 볼까?"
집에서 써 볼 때는 1. 행동을 바로 고치기 전에 네 질문 가운데 하나만 골라 마음속으로 던져 보고, 2. 떠오른 짐작을 단정 대신 질문의 모양으로 아이에게 건네고, 3. 아이의 대답이 짐작과 달라도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주는 순서로 해 보시면 됩니다. 네 사람이 같은 질문에서 서로 다른 답을 냈던 것처럼, 한 아이를 보는 창도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Q. 말씀은 아이 마음의 깊은 곳을 어떻게 비춰 줄까요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잠언 20:27)
정신분석이 "사람에게는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하는 마음의 층이 있다"고 말하기 오래전부터, 잠언은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는 등불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의 반복되는 행동 밑에 무엇이 있는지 부모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 깊은 속까지 아시고 비추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은, 부모에게 큰 쉼이 됩니다. 네 학자의 질문을 빌려 아이를 바라보되, 끝내 다 알 수 없는 부분은 그분의 등불 아래 맡겨 둘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부모는 아이를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받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에릭슨이 말한 첫 단계의 신뢰처럼, 아이의 마음이 기대어 쉬는 자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으신 분께 이 책을 소개해 드립니다.
▶ 존 볼비의 안전기지 — 애착이론의 치료적 적용 (학지사) — 쿠팡에서 보기
맘맘톡
정신분석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사람에게는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하는 마음의 층이 있다"는 통찰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관찰입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다 알지 못하고,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도 종종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곤 합니다.
다만 이 통찰이 서 있는 자리를 짚어 볼 필요는 있습니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초기 정신분석은 사람의 마음을 전적으로 자연적·생물학적 기제로 설명하려 했고, 그 설명 안에 신을 위한 자리를 따로 두지 않았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6) 4장 2절은 다른 그림을 보여 줍니다 — "하나님이 다른 모든 생물을 지으신 뒤,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식과 공의와 참된 거룩함을 갖춘 이성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으로,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즉 사람의 마음이 복잡하고 깊다는 관찰은 두 그림 모두가 인정합니다. 차이는 그 깊음이 어디서 왔다고 보는가입니다. 한쪽은 그 깊음을 순전히 자연의 결과로, 다른 한쪽은 그 깊음을 지으신 분의 형상이 담긴 자리로 봅니다. 이 차이는 이론을 비난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어떤 존재로 보는지에 관한 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아들러의 열등감과 보상, 융의 원형, 에릭슨의 생애 단계는 각각 사람의 마음을 읽는 유용한 창문입니다.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까지는, 어느 창문도 혼자서 답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이의 마음속 알 수 없는 행동을 들여다볼 때, "이 아이의 마음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복잡하다"는 것과 함께, "이 깊음은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 아니라 지으신 분의 뜻이 담긴 자리"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아이를 분석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존귀하게 지어진 존재로 함께 보는 시선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의 반복되는 짜증이나 불안한 행동을 볼 때, "이 아이 안에 무슨 기제가 작동하고 있나"를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유익한 일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아이는 분석할 대상이기 전에, 이미 존귀하게 지어진 한 사람이다"라는 자리를 놓치지 않으면, 아이를 다루는 마음가짐 자체가 조금씩 달라져 갑니다.
오늘은 조금 무거운 이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낱낱이 다 외우지 않으셔도 전혀 괜찮습니다. "이런 갈림길이 있었구나" 정도만 가볍게 기억해 두셔도 다음 이야기들이 훨씬 수월하게 읽히실 겁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계보 중 한 갈래에서 갈라져 더 뻗어 나온, "생각을 바꾸면 감정이 바뀐다"는 인지행동 접근을 쉽게 풀어 보겠습니다.
아이의 알 수 없는 행동 앞에서 저도 답을 찾지 못해 서성인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제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자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다시 아이를 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도우심이었다고 고백하며 감사드립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에베소서 3:16). 바울은 속사람이 강건해지기를 구하는 기도를 남겼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아직 복잡하고 흔들려도, 그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는 분의 손길 안에서 자라 갈 것이라는 소망을 함께 품고 싶습니다.
#정신분석 #지그문트프로이트 #알프레드아들러 #칼융 #에릭에릭슨 #개인심리학 #분석심리학 #자아심리학 #정서중심코칭 #정서중심라이프코칭 #맘맘톡심리코칭 #부모심리학
출처: Sigmund Freud, 「On the History of the Psycho-Analytic Movement」(1914, A. A. Brill 영역 1917, Project Gutenberg 전문) · Freud, 『Über Psychoanalyse: Fünf Vorlesungen』(1910) · Freud Museum London, 「Freud at Home: The Wednesday Psychological Society」(2020) · Alfred Adler, 『Understanding Human Nature』(W. B. Wolfe 영역) · Adler, 『Über den nervösen Charakter』(1912) 서지 · C. G. Jung, 『Collected Papers on Analytical Psychology』(2판 1917, 영역) · Erik H. Erikson, 『Childhood and Society』(Norton, 1950) · Harvard University Faculty of Arts and Sciences, Erik Erikson 추모 기록(2002)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6) 4장 2절 — 미국 정통장로교회(OPC) 영문 전문(opc.org/wcf.html) 원문 대조
'심리 코칭'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정서란 무엇인가 — 심리학이 감정을 설명해 온 세 가지 방식 (0) | 2026.11.07 |
|---|---|
| 코칭 용어 정리 — 자주 듣는데 정확히는 몰랐던 말들 (0) | 2026.11.06 |
| 발달심리학 한눈에 — 피아제와 에릭슨이 본 "자라는 단계" (0) | 2026.11.05 |
| 의사소통 유형 — 사티어가 나눈 다섯 가지 대화 방식 (0) | 2026.11.05 |
| 반두라가 본, 사람이 보고 배우는 마음 (0) | 2026.11.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