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도 가르친 적 없는 말투나 손짓을 아이가 똑같이 따라 하는 걸 보고, 흠칫 놀라신 적 있으신가요?
아이가 인형을 앉혀 놓고 선생님 놀이를 할 때, 그 말투가 꼭 엄마 같아서 웃다가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지요. 저도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하루 대부분을 함께 보내다 보니, 제가 의도해서 가르친 것보다 그냥 보여 준 것이 훨씬 많이 아이에게 옮겨 가 있었어요.
오늘은 심리코칭 시리즈 열아홉 번째 이야기로, 보는 것만으로도 배움이 일어난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 준 앨버트 반두라의 연구를 원래 논문 그대로 따라가 볼게요.

Q. 보보 인형 실험에서 아이들은 정말 무엇을 봤을까요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스탠퍼드대학교에서 60년 가까이 연구한 심리학자예요. 2021년 95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미국심리과학회는 그의 이름이 1961년 보보 인형 실험과 거의 같은 말이 되었다고 적었어요.
흔히 "어른이 인형 때리는 영상을 보여 준 실험"으로 알려져 있는데, 1961년 원래 논문을 읽어 보면 조금 달라요. 스탠퍼드대 부속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 72명(남아 36명, 여아 36명)이 참여했고, 평균 나이는 52개월이었어요. 아이는 놀이방 한쪽에 앉아 있었고, 같은 방 다른 쪽에서 실제 어른이 약 10분 동안 노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한 조건의 어른은 1분쯤 조립 장난감을 만지다가 키 150cm쯤 되는 풍선 인형을 망치로 치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거친 말을 했어요. 다른 조건의 어른은 끝까지 조용히 조립 장난감만 가지고 놀았고요. 영상 모델을 쓴 건 1963년 후속 연구였어요. 그 논문 제목이 아예 「영상으로 본 공격적 모델의 모방」이에요. 실제 사람이든 화면 속 사람이든, 아이가 지켜보는 대상이면 모두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질문으로 연구가 이어진 셈이지요.
그다음 연구진은 아이들을 다른 방으로 데려가 좋은 장난감을 잠깐 주었다가 "이건 다른 친구들 몫이야" 하며 거둬 갔어요. 살짝 속상한 마음을 일부러 만든 거예요. 그리고 인형과 여러 장난감이 있는 방에서 20분 동안 아이를 혼자 놀게 하고, 일방경 너머에서 5초 단위로 행동을 기록했어요. 공격적인 어른을 본 아이들은 그 어른과 닮은 몸짓과 말로 인형을 공격하는 행동을 많이 보였어요. 조용한 어른을 본 아이들과 아무도 보지 않은 아이들은 그런 행동이 아주 적었고요.
Q. 아이들은 거친 행동만 따라 했을까요
이 실험에서 엄마들이 꼭 봐 두셨으면 하는 결과는 따로 있어요. 공격적인 어른을 본 아이 가운데 약 3분의 1은 그 어른이 했던 공격적이지 않은 말까지 그대로 따라 했어요. 아이는 '때리는 법'만 골라 배운 게 아니라 그 어른의 말투와 분위기를 통째로 담아 간 거예요.
반대쪽 결과도 있어요. 조용히 놀던 어른을 본 아이들은 공격적인 어른을 본 아이들보다 차분히 앉아 있던 시간이 두 배 이상 길었어요. 특히 차분한 남자 어른을 본 아이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은 아이들보다도 덜 공격적이었어요. 남아가 몸으로 하는 공격을 더 많이 따라 했고, 여자 어른보다 남자 어른 모델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났다는 차이도 함께 보고됐어요.
그러니 관찰학습은 겁나는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아이가 화내는 모습을 따라 할 수 있다면, 숨 고르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도 따라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아빠가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아이에게 어떤 힘이 되는지도 이 결과가 조용히 말해 줘요.
요즘 아이들이 지켜보는 모델은 부모만이 아니에요. 형제, 친구,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는 화면 속 사람들까지 있지요. 모든 걸 막을 수는 없으니, 가끔은 아이가 보는 영상을 옆에서 함께 보다가 "저 사람은 화가 날 때 저렇게 하네.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하고 물어봐 주세요. 본 것을 그대로 담기 전에, 한 번 생각해 볼 틈을 만들어 주는 질문이에요.

Q. 보고도 따라 하지 않는 아이는 배우지 않은 걸까요
반두라는 1965년 후속 연구에서 모델이 행동한 뒤 칭찬을 받는지, 혼이 나는지, 아무 일도 없는지를 달리해 보여 줬어요. 모델이 혼나는 장면을 본 아이들은 그 행동을 덜 따라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상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모델이 한 것을 떠올려 보게 하자, 세 집단 사이의 차이가 사라졌어요. 2011년 동료심사 학술지에 실린 관찰학습 리뷰도 이 대목을 '습득 지표에서는 차이가 사라졌다'고 정리하고 있어요.
이 결과가 가르쳐 주는 건 배우는 것과 해 보이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에요. 혼날 것 같으면 아이는 겉으로 하지 않을 뿐, 본 것은 이미 머릿속에 담겨 있을 수 있어요. 집에서 "그런 말 쓰면 혼나" 하고 막으면 당장은 그 말이 줄지만, 아이가 그 말을 어디선가 보고 들은 기억까지 지워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금지만큼, 아니 그보다 먼저 아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이 중요해요.
형제가 있는 집이라면 이 장면이 더 와닿으실 거예요. 큰아이가 혼나는 걸 지켜본 동생은 그날은 얌전하지만, 엄마가 안 보는 곳에서 형의 그 행동을 그대로 해 보기도 하지요. 동생이 배운 건 '그 행동을 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엄마 앞에서는 하지 않는다'였을 수 있어요. 혼내는 장면 뒤에 "그럼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함께 보여 주면, 아이가 담아 갈 장면이 하나 더 생겨요.
Q.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자라날까요
1977년 반두라는 『심리학 리뷰』에 자기효능감에 관한 논문을 실었어요. 초록에서 그는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기대가 어떤 일에 손을 댈지, 얼마나 애쓸지, 장애물과 괴로운 경험 앞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지를 결정한다는 가설을 내놓았어요. 같은 실력이라도 "해 볼 만하다"고 믿는 아이와 "어차피 안 돼"라고 믿는 아이는 출발선에서부터 다르게 움직인다는 거예요.
그는 이 믿음이 네 가지 원천에서 나온다고 했어요. 직접 해낸 경험(수행 성취), 남이 해내는 걸 지켜본 경험(대리 경험), 주변의 말(언어적 설득), 그리고 긴장이나 떨림 같은 몸의 상태예요. 초록은 경험에서 나온 원천이 믿을 만할수록 효능감도 크게 달라진다고 덧붙였어요. 말로 하는 "넌 할 수 있어"보다, 아이가 실제로 한 번 해낸 경험이 더 단단한 근거가 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어요.
집에서 옮기면 이렇게 돼요. 아이가 끝까지 해낼 수 있는 크기로 과제를 잘라 주고(수행 성취), 엄마가 처음엔 서툴다가 연습으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 주고(대리 경험), 칭찬은 "잘했어" 대신 "어제보다 두 문제 더 혼자 풀었네"처럼 근거를 담아 건네고(언어적 설득), 시험 전 두근거림을 "몸이 준비하고 있구나" 하고 함께 이름 붙여 주는 거예요(몸의 상태).
이 네 가지 가운데 엄마가 가장 쉽게 놓치는 건 첫 번째예요. 아이가 힘들어하면 마음이 급해져 대신 풀어 주거나 답을 알려 주게 되지요. 그 순간은 아이도 엄마도 편하지만, 아이 손에는 '내가 해냈다'는 경험이 남지 않아요. 도와주더라도 마지막 한 걸음은 아이가 내딛게 남겨 두는 것, 그게 자기효능감이 자랄 자리를 지켜 주는 일이에요.
Q. 완벽하지 않은 부모는 무엇을 보여 주면 좋을까요
반두라의 실험을 읽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지실 수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화를 낸 날, 약속을 못 지킨 날이 떠올라서요. 그런데 아이가 보고 배우는 것이 '완벽한 행동'만은 아니에요. 실수한 뒤에 어떻게 하는지도 아이는 똑같이 보고 담아 가요.
"아까 엄마가 소리 지른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어. 다음엔 숨 한 번 쉬고 말해 볼게." 이 한마디는 아이에게 실수해도 돌아와 고칠 수 있다는 장면을 보여 줘요. 완벽한 모델을 보여 줄 수는 없어도, 고쳐 가는 모델은 매일 보여 줄 수 있어요. 아이에게 오래 남는 건 그쪽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엄마가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모습도 아이에게는 좋은 장면이에요. 서툰 요리를 레시피를 보며 다시 해 보는 모습, 모르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는 모습이요. 아이는 그 장면에서 '어른도 처음엔 못 하는구나, 그래도 해 보는구나'를 함께 담아 가요.
맘맘톡
| 개념 | 연구가 보여 준 것 | 부모가 할 일 |
|---|---|---|
| 관찰학습(1961) | 실제 어른을 10분 본 것만으로 몸짓과 말투까지 따라 함, 차분한 모델도 옮겨 감 | 가르치는 말보다 보여 주는 모습을 먼저 돌아보기 |
| 학습과 수행(1965) | 혼날 장면을 보면 덜 해 보일 뿐, 본 것은 이미 배웠을 수 있음 | 금지보다 아이가 보는 환경을 먼저 살피기 |
| 자기효능감(1977) | 수행 성취·대리 경험·언어적 설득·몸의 상태에서 자라는 '할 수 있다'는 믿음 | 해낼 수 있는 크기로 잘라 주고 근거 있는 칭찬 건네기 |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던 시절을 떠올리면, 제가 가장 많이 가르친 건 교과서 내용이 아니라 제 표정과 말투였던 것 같아요. 아이가 어려운 문제 앞에서 보이는 표정이나 한숨이 사실은 엄마의 것을 닮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이를 고치기 전에 제 모습부터 살피게 돼요. 반두라를 공부하며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아이를 바꾸려 애쓰기 전에 아이가 보는 장면을 먼저 바꿔 볼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어요.
당부드리고 싶은 건, 아이가 따라 한 행동을 아이를 탓하는 근거로 쓰지 않으셨으면 한다는 거예요. 아이가 한 말과 몸짓은 어딘가에서 보고 담아 온 것이에요. 그 출처를 찾아 조금씩 고쳐 가는 일이, 아이를 다그치는 것보다 훨씬 오래가는 변화를 만들어요.
저는 반두라의 연구를 읽을 때마다, 부모라는 자리가 단지 높은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눈앞에 세워진 자리라는 걸 다시 생각해요. 아이에게 존중을 바라는 만큼, 그 자리에 선 사람에게도 걸맞은 책임이 함께 맡겨져 있다는 것을요. 다만 그 책임을 혼자 짊어진 무거운 짐으로만 여기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넘어진 날 다시 일어서는 모습까지 보여 주라고 맡겨진 자리이니까요.
이번 주 실천 목표: 이번 주에 엄마가 아이 앞에서 실수하는 순간이 한 번 오면, 그냥 넘기지 말고 "아까 엄마가 한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어. 다음엔 이렇게 해 볼게"를 소리 내어 말해 보세요. 그 한 문장이 아이에게는 실수 뒤에 돌아오는 법을 보여 주는 10분짜리 실험이 될 거예요.
아이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고민하는 그 마음이 이미 아이에게 좋은 장면 하나를 보여 주고 있어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참고: Bandura, Ross & Ross, 「Transmission of aggression through imitation of aggressive models」,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63권 3호(1961), 전문(https://psychclassics.yorku.ca/Bandura/bobo.htm) · Bandura, 「Self-efficacy: Toward a unifying theory of behavioral change」, Psychological Review 84권 2호(1977), 초록(https://longevity.stanford.edu/self-efficacy-toward-a-unifying-theory-of-behavior-change/) · Fryling, Johnston & Hayes, The Analysis of Verbal Behavior 27권 1호(2011)의 Bandura(1965) 요약(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3139552) · 미국심리과학회(APS) 부고(https://www.psychologicalscience.org/publications/observer/obsonline/albert-bandura-obituary.html) (2026년 11월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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