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서 손 씻고, 숙제 꺼내고, 물통도 채워 와"라고 세 가지를 한꺼번에 말하면, 아이가 손만 씻고 멍하니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히 듣고 "네"라고 대답까지 했는데, 두 가지는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아이가 왜 여러 가지 지시를 한 번에 받으면 꼭 몇 가지를 놓치는지, 그리고 이것이 집중력 부족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온다는 것을 짚어 보려 합니다. 머릿속에서 정보를 붙잡아 두는 공간의 크기와 관련된 문제일 수 있습니다.

Q. 왜 한 번에 여러 개를 말하면 꼭 하나씩 놓칠까요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 잠깐 붙잡아 두고 쓸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는데, 이 공간을 작업기억이라고 부릅니다. 어른도 이 공간이 무한하지 않지만, 아이는 그 용량이 아직 어른보다 작은 경우가 많습니다. 세 가지 지시를 한꺼번에 들으면, 그중 한두 가지는 공간이 부족해 금방 밀려나 버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시를 듣는 동안에도 아이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함께 떠다닙니다. 방금 보던 만화 장면, 친구와 나눌 이야기 같은 것들이 작업기억의 일부를 이미 차지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세 가지 지시가 들어오면, 비어 있는 공간이 더 좁아서 쉽게 놓치게 됩니다. 이것은 "안 들어서"가 아니라 "들을 당시 공간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지시를 놓쳤을 때 "똑바로 안 들었지"로 다그치시기보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말했나 보다"로 먼저 돌아봐 주시는 편이 상황에 더 가깝습니다. 아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아직 작은 것뿐입니다.
Q. 그런데 왜 순서까지 자꾸 바뀌어 버릴까요
여러 가지 일을 순서대로 떠올리고, 하나를 끝내면 다음 일로 넘어가도록 조절하는 능력을 실행기능이라고 부릅니다. 작업기억이 "담아 두는 그릇"이라면, 실행기능은 그 그릇 안에 담긴 것을 "순서대로 꺼내 쓰는 손"에 가깝습니다. 이 조절 능력도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으면, 세 가지 중 한두 개는 담았어도 그것을 순서대로 꺼내 쓰는 데서 또 한 번 흐트러집니다.
엄밀히 말하면 두 가지가 완전히 따로 노는 것은 아닙니다. 발달인지신경과학자 아델 다이아몬드(Adele Diamond)는 2013년 학술지 『Annual Review of Psychology』에 실은 실행기능 총설에서, 실행기능의 핵심을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충동을 누르고 방해 자극을 걸러 내는 억제 조절, 작업기억, 그리고 상황이 바뀌면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는 인지적 유연성입니다. 작업기억 자체가 실행기능의 한 축인 셈이고, 옆에서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하던 일에 머무르는 힘(억제 조절)이 함께 받쳐 주어야 지시가 끝까지 이어집니다. 같은 글에서 다이아몬드는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같은 상태가 실행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예를 들어 손 씻기와 물통 채우기를 둘 다 기억했더라도, 중간에 동생이 부르거나 TV 소리가 들리면 그 순간 하던 일의 순서가 끊깁니다. 어른은 끊긴 뒤에도 "아까 어디까지 했지"를 스스로 되짚지만, 실행기능이 아직 서툰 아이는 중간에 끊기면 나머지를 통째로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업기억 과부하와 실행기능 미숙은 이렇게 겹쳐서, 세 가지 지시 중 두 가지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작업기억은 심리학자 앨런 배들리(Alan Baddeley)가 1974년 동료 그레이엄 히치(Graham Hitch)와 함께 「Working Memory」라는 글로 모델을 제안한 이후 꾸준히 연구된 영역입니다. 아동 작업기억 연구자 수전 개더콜(Susan Gathercole)과 트레이시 앨러웨이(Tracy Alloway)가 교사용으로 펴낸 안내서에 따르면, 작업기억 용량은 어린 시기에 매우 작다가 십대 무렵까지 서서히 늘어나 어른 수준에 이릅니다. 같은 나이의 아이들 사이에서도 용량 차이가 매우 크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보다 앞서 1956년, 심리학자 조지 밀러(George Miller)는 사람이 한 번에 머릿속에 붙잡아 둘 수 있는 항목의 수가 대략 7개 안팎(더하거나 빼서 2개 정도)이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매직 넘버 7"입니다. 다만 이것은 성인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이고, 2001년 심리학자 넬슨 코완(Nelson Cowan)은 여러 연구를 다시 모아 검토한 논문에서, 밀러의 7은 엄밀한 한계라기보다 대략적인 추정이었고 덩어리로 묶는 요령을 쓰기 어려운 조건에서는 어른도 평균 4개 정도의 덩어리를 붙잡는다고 정리했습니다. 어른이 그 정도라면, 용량이 아직 자라는 중인 아이에게는 더 빠듯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시처럼 복잡한 내용(동사와 목적어가 함께 묶인 "손을 씻어라", "숙제를 꺼내라" 같은 단위)은 숫자 하나보다 훨씬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세 가지 지시만으로도 아이의 작업기억은 금방 꽉 차 버릴 수 있습니다.
Q. 연구자들은 교실에서 어떤 장면을 보았을까요
개더콜과 앨러웨이의 안내서 『Understanding Working Memory: A Classroom Guide』(2007)에는 작업기억이 약한 아이의 실제 교실 장면이 사례로 실려 있습니다. 조용하고 수업 태도도 바른 한 남자아이였는데, 선생님은 이 아이가 자기 말을 잘 안 듣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장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선생님이 컴퓨터 로그인 카드를 건네며 "13번 컴퓨터로 가서 해 보렴"이라고 하자, 아이는 그 번호를 잊어버려 해내지 못했습니다. 칠판의 날짜와 제목을 한 글자씩 옮겨 적다가 어디까지 적었는지 놓쳐, 날짜를 쓰다 말고 제목을 이어 쓰기도 했습니다.
안내서는 이런 아이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해야 할 일을 그냥 잊어버린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지시를 따라 다른 반 선생님에게 심부름은 제대로 갔는데, 막상 가서 전할 말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예로 들었습니다. 저자들은 "초록 탁자에 활동지 올려놓고, 화살표 카드는 봉투에 넣고, 연필 치우고, 매트에 와서 앉으렴" 같은 긴 지시를 작업기억이 약한 아이의 용량을 넘기 쉬운 활동으로 꼽았고, 한 번 작업기억에서 빠져나간 정보는 되찾을 수 없어 처음부터 다시 넣어 주는 수밖에 없다고 적었습니다. 교실에서 "느리다", "딴짓한다"로 보이던 모습이 실은 이런 과부하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Q.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길까요
집에서 생기는 일은 교실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집니다. 선생님이 "책 넣고, 다음 교과서 꺼내고, 줄 서서 나가자"처럼 한 번에 여러 지시를 내리는 경우, 학급 전체가 똑같은 양의 정보를 한꺼번에 받습니다. 작업기억 용량이 상대적으로 작은 아이는 그 순간 두세 가지 중 하나를 놓치고, 주변 친구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서야 뒤늦게 따라가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느리다", "딴짓한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시를 처리하는 그릇의 크기 차이에서 온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이일수록 교실에서는 옆자리 친구나 선생님의 추가 설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집에서 지시를 나누어 주는 연습을 충분히 해 두면, 교실에서도 지시의 일부를 놓쳤을 때 "방금 뭐라고 하셨지" 하고 스스로 되묻거나 짝에게 물어보는 자연스러운 대처 방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그럼 부모가 지금 해 줄 수 있는 건 뭘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지시를 한 번에 세 가지씩 몰아서 주지 않는 것입니다. "손 씻고 와"라고 말하고 그 일을 끝낸 뒤에, "이제 숙제 꺼내 와"로 이어 가는 식으로 한 번에 하나씩 끊어서 주시면, 아이의 작업기억에 부담이 훨씬 줄어듭니다.
세 가지를 한 번에 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손가락을 하나씩 짚으며 "첫째, 손 씻기. 둘째, 숙제 꺼내기. 셋째, 물통 채우기"처럼 숫자를 붙여 말씀해 주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숫자로 나누면 아이도 머릿속에서 정보를 덩어리로 정리하기가 쉬워지고, 다 말한 뒤에 아이에게 "방금 뭐라고 했지?"로 한 번 따라 말해 보게 하면 작업기억에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실제 대화는 이런 식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말할게. 첫째, 손 씻기. 둘째, 숙제 꺼내기. 셋째, 물통 채우기. 몇 가지였지?" "세 개!" "뭐였는지 손가락으로 세면서 말해 볼래?" "손 씻고… 숙제… 그리고… 물통!" 중간에 막히면 정답을 바로 알려 주기보다 "둘째는 가방이랑 관계있는 거였는데" 하고 실마리만 건네 주세요. 아이가 가는 길에 "손 씻기, 숙제, 물통" 하고 작게 되뇌는 것도 좋은 습관입니다. 개더콜과 앨러웨이의 안내서도 중요한 정보를 속으로 되뇌어 붙잡는 연습(시연)을 아이가 익혀 갈 전략으로 꼽았습니다.
중간에 다른 일로 끊겼을 때는, "아까 어디까지 했었지?"를 부모가 먼저 물어 주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질문을 반복해서 받다 보면, 아이도 점차 스스로 "아, 맞다, 그다음은"을 떠올리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잊어버렸을 때 "엄마, 두 번째가 뭐였지?" 하고 다시 물어보는 것을 혼날 일이 아니라 잘한 일로 받아 주세요. 안내서에는 예전엔 혼란스러운 얼굴로 앉아만 있던 아이가 이제는 스스로 다시 말해 달라거나 도와 달라고 요청한다는 교사의 소감이 실려 있습니다. 작업기억이 약한 아이들은 자기가 무언가를 잊었다는 것은 대개 알지만,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다시 묻는 길을 열어 두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부담이 덜어집니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일처럼 순서가 늘 같은 일이라면, 글이나 그림으로 된 체크리스트를 눈에 보이는 곳에 붙여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세수하기 → 옷 입기 → 가방 챙기기"처럼 순서를 그림으로 정리해 두면, 아이는 매번 머릿속으로 순서를 다시 붙잡으려 애쓰는 대신 눈으로 확인하며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외부에 순서를 적어 두면 작업기억이 떠안아야 할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다만 안내서에 따르면 이런 도구도 처음 쓰는 법을 익히는 데 품이 들어서, 작업기억이 약한 아이는 오히려 잘 쓰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쁜 아침에 처음 붙여 놓기보다, 여유 있는 주말에 "그림 보고 다음 거 찾아볼까?" 하며 함께 따라가 보는 연습부터 하시길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시를 놓쳤을 때 아이의 의지나 성실성을 의심하지 않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지시라도 한 번에 몇 개까지 담을 수 있는지는 아이마다, 그리고 그날의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담을 수 있는 만큼만 나누어 주는 것이, 아이가 지시를 끝까지 따라가도록 돕는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잠이 부족하거나 지친 시간대, 마음이 불안하거나 속상한 때, 혹은 좋아하는 놀이를 막 그만둔 직후처럼 아이의 주의가 이미 다른 곳에 쏠려 있는 때에는, 평소보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더 작아진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 두시면 좋습니다. 앞서 소개한 다이아몬드의 총설도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실행기능을 떨어뜨린다고 짚고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지시를 더 짧게, 더 적은 개수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입니다.
맘맘톡
| 개념 | 뜻 | 부모가 할 일 |
|---|---|---|
| 작업기억 과부하 | 한 번에 붙잡을 수 있는 정보량을 넘어서는 것 | 지시를 한 번에 하나씩 끊어서 주기 |
| 실행기능 미숙 | 순서대로 꺼내 쓰는 조절력이 아직 서툰 것 | 숫자를 붙여 순서를 정리해 주기 |
| 공통 해법 | 말한 뒤 "방금 뭐라고 했지?"로 따라 말해 보게 하기 | |
정리하면,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시키면 꼭 하나씩 빼먹는 것은 집중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 번에 붙잡을 수 있는 작업기억의 한계와, 그것을 순서대로 꺼내 쓰는 실행기능이 아직 자라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지시를 나누어 주고 따라 말해 보게 하면, 놓치는 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용량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늘어나지만, 지금 당장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에게 맞는 만큼만 나누어 주는 것이 다그치는 것보다 훨씬 빠른 길입니다.
두 아이를 집에서 가르치며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까지 보내는 동안, 저도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말해 놓고 "왜 또 안 했어"라며 답답해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지시를 하나씩 끊어서 주고, 끝낸 뒤에 다음 것을 말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나서부터는 "빼먹었다"는 말을 할 일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바뀐 것은 아이의 집중력이 아니라, 제가 한 번에 건네는 정보의 양이었습니다.
오늘 아이에게 여러 가지를 부탁해야 한다면, 한 번에 다 말하기 전에 숫자를 붙여 끊어 보세요. 그 작은 조정 하나가, 아이가 끝까지 지시를 따라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도 "몇 번을 말해도 하나씩 빼먹는다"고 답답하신 부모님들께, 그것이 아이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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