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심리학은 주로 "무엇이 사람을 아프게 하는가"를 연구해 왔습니다. 우울, 불안, 트라우마처럼 문제가 되는 상태를 치료하는 것이 심리학의 중심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한 심리학자가 던진 질문이 이 방향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병이 없는 것과 잘 사는 것은 같은 것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심리코칭 시리즈 열여덟 번째 편으로, 심리학의 관심을 병리에서 번영으로 옮긴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흐름을 알면, 아이를 키울 때도 "문제가 없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잘 자라는 것"까지 바라보는 시야가 생깁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오늘 다룬 셀리그만의 이야기를 원전으로 더 깊이 읽어 보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참고해 보실 만합니다.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개정판) — 쿠팡에서 보기

셀리그먼은 왜 심리학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나요

마틴 셀리그먼은 1967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동료 스티브 마이어와 함께 반복된 실패 경험이 쌓이면 벗어날 방법이 있어도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 불렀습니다. 이 연구는 이후 우울증을 이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간 이런 문제 중심 연구를 이어 오던 셀리그먼은, 1998년 사상 최대 득표로 미국심리학회 회장에 선출된 것을 계기로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심리학이 사람을 병에서 꺼내는 데는 많은 것을 알아냈는데, 병이 없는 사람을 더 잘 살게 하는 법은 왜 이렇게 적게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물음에서 긍정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고, 2000년을 전후해 하나의 연구 분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번영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
셀리그먼은 번영을 이루는 요소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는데, 각 요소의 앞글자를 따 PERMA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긍정정서(기쁨·감사 같은 좋은 감정), 몰입(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활동), 관계(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의 연결), 의미(자기보다 큰 가치를 향한 소속감), 성취(목표를 이루어 낸 감각)의 다섯 가지입니다.

이 다섯 요소가 흥미로운 것은,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한 번영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취만 높고 관계가 빈약한 사람, 즐거운 일은 많은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 모두 어딘가 허전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셀리그먼의 연구는 이 다섯 요소가 골고루 있을 때 사람이 가장 안정적으로 잘 지낸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적도 좋고 상도 자주 받는 아이인데, 쉬는 시간마다 혼자 있거나 또래와 깊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면, 성취(A)는 채워져 있지만 관계(R)는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반대로 친구는 많지만 스스로 몰입해서 좋아하는 활동이 하나도 없는 아이는, 관계는 채워져 있어도 몰입(E)이 비어 있는 경우입니다. 겉으로는 둘 다 "문제없이 지내는 아이"처럼 보이지만, 다섯 조각 중 무엇이 비어 있는지를 알면 어느 쪽을 더 채워 줘야 할지가 분명해집니다.
이 흐름이 실제 학교 교육으로도 이어졌나요
셀리그먼의 연구는 이론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 학교 현장으로도 옮겨졌습니다. 2006년부터 호주의 질롱 그래머 스쿨(Geelong Grammar School)이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셀리그먼 연구팀과 협력을 시작했고, 2008년에는 셀리그먼과 가족, 연구팀이 직접 학교에 상주하며 교직원 250여 명을 대상으로 긍정심리학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2009년부터 중·고등학생 수업에 정규 교과목으로 "긍정교육(Positive Education)"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시도가 보여 준 것은, 번영의 다섯 요소가 상담실에서만 다루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교실에서도 가르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술이라는 점입니다. 감사한 일을 기록하는 습관, 자기 강점을 알아보는 연습,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 주는 시간 같은 것들이 실제 수업 시간표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성적표에 나오지 않는 이런 영역도 학교가 의도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질롱 그래머 스쿨의 사례가 실제로 증명해 보인 셈입니다.
가정에서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학교가 정규 시간표에 자리를 내준 것처럼, 가정에서도 따로 시간을 정해 "강점을 알아보는 대화"나 "오늘 몰입했던 순간 나누기"를 해 볼 수 있습니다.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매주 한 번 식탁에서 "이번 주에 제일 몰입했던 순간이 뭐였어?"를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성적표에는 나오지 않는 번영의 조각들을 가정 안에서 의도적으로 챙기는 셈이 됩니다.
아이에게는 이 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성적이나 문제 행동이 없다는 것만으로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PERMA 모델에 비추어 보면, 성적이라는 성취 하나만 챙기고 나머지 네 요소를 놓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시간이 있는지, 믿을 수 있는 친구나 가족 관계가 있는지, 자기보다 큰 무언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시면 좋습니다.
일상에서는 하루를 마칠 때 "오늘 좋았던 일 하나"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긍정정서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깁니다. 아이가 몰입하는 활동을 방해받지 않도록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 가족 식사 자리에서 서로의 하루를 묻는 것, "네가 도와줘서 동생이 참 좋아했어"처럼 작은 의미를 짚어 주는 것 모두 PERMA의 다섯 요소를 하나씩 채워 주는 방법이 됩니다.
셀리그먼 연구팀이 실제로 제안한 방법 중에는 "세 가지 좋은 일(Three Good Things)" 적기도 있습니다. 매일 저녁 그날 있었던 좋은 일 세 가지와, 그 일이 왜 좋았는지를 한두 줄 적어 보는 것입니다. 거창한 사건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수학 문제를 혼자 풀어냈다", "친구가 먼저 인사해 줬다"처럼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기록하면, 하루 중 무심코 지나쳤던 좋은 순간을 알아보는 눈이 조금씩 길러집니다. 아이와 함께 자기 전 2~3분만 이 습관을 나눠 보셔도, 긍정정서 요소를 채우는 작은 실천이 됩니다.
맘맘톡
| 요소 | 뜻 |
|---|---|
| 긍정정서(P) | 기쁨·감사 같은 좋은 감정을 느끼는 순간 |
| 몰입(E)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활동 |
| 관계(R)·의미(M)·성취(A) | 의지할 사람, 큰 가치에 대한 소속감, 목표를 이룬 감각 |
셀리그먼의 PERMA 모델은 사람이 번영하는 모습을 다섯 조각으로 세심하게 그려 낸 틀입니다. 다만 이 틀이 그리는 번영은 스스로 쌓아 올리는 번영—좋은 감정을 더 느끼고, 더 몰입하고, 더 성취해서 도달하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번영이나 평안을 조금 다른 자리에서 설명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1647) 제36문답은 "이 생에서 따라오거나 흘러나오는 유익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양심의 평안, 성령 안에서 누리는 기쁨, 은혜의 증가와 그 안에서의 인내"라고 답합니다.
PERMA의 요소들은 대체로 노력해서 "쌓아 가는" 것이라면, 이 고백이 말하는 평안과 기쁨은 은혜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하나는 좋은 조건들을 갖춰야 도달하는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주어진 사랑을 확신하는 데서 자연히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번영을 가르치실 때, 노력으로 채워야 할 몫과 이미 주어진 것으로 누릴 수 있는 몫이 둘 다 있다는 것을 함께 전해 주시면, 성취가 부족한 날에도 아이가 느끼는 공허함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두 틀이 서로 반대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를 기록하는 습관, 관계를 돌보는 노력은 신앙의 자리에서도 똑같이 소중합니다. 다만 그 노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노력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자리에도 이미 주어진 평안이 있다는 것을 함께 알려 주시면, 아이가 다섯 요소 중 몇 가지가 부족한 시기를 지날 때도 그 부족함에 짓눌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아이와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오늘 좋았던 일 하나"를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해 보세요. 문제가 없었던 하루를 넘어, 정말 잘 지낸 하루가 무엇인지 함께 짚어 보는 작은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아이가 문제없이 지내는 것을 넘어 정말 잘 지내기를 바라시는 부모님들께, 그 마음이 심리학이 뒤늦게 찾아낸 질문과 닿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긍정심리학 #마틴셀리그먼 #PERMA모델 #학습된무기력 #정서중심코칭 #정서중심라이프코칭 #맘맘톡심리코칭 #부모심리학 #웰빙
출처: 마틴 셀리그먼(Martin E. P. Seligman, 1942~) 긍정심리학·PERMA 모델 — Wikipedia·펜실베이니아대학교 긍정심리학센터(Positive Psychology Center) 공식 경력 자료 교차확인 ·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1647) 제36문답 — 미국 정통장로교회(OPC) 영문 전문(thewestminsterstandard.org) 원문 대조
'심리 코칭'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족체계이론 — 보웬이 본, 가족이라는 그물 한 가닥 (0) | 2026.10.24 |
|---|---|
| 감정조절 — 감정을 "참는 것"과 "다루는 것"은 다르다 (0) | 2026.10.23 |
| 동기 —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해야 해서 하는 것의 차이 (0) | 2026.10.22 |
| 애착 이론 — 아이가 부모에게 매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0) | 2026.10.21 |
| 자존감과 정체성 — "나는 누구인가"를 묻기 시작하는 마음 (0) | 2026.10.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