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방을 나오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물." 물을 가져다주고 다시 나오면 "화장실." 그다음은 "배 아파." 그다음은 그냥 "엄마." 시계를 보면 삼십 분이 지나 있습니다.
오늘은 아이가 자기 전에 자꾸 미룰 때 그 시간을 어떻게 볼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빨리 재우는 방법이 아니라, 그 삼십 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Q. 자꾸 미룹니다. 버릇이 된 걸까요?
버릇이라는 말이 붙으면 그때부터 대응이 하나로 정해집니다. 고쳐야 하는 것이 되니까요. 그런데 이 시간을 조금 다르게 보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아이에게 잠자리는 하루 중 처음으로 혼자가 되는 자리입니다. 낮에는 학교가 있고 학원이 있고 형제가 있고 화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불이 꺼지면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집니다. 낮에 미뤄 둔 생각이 그때 올라옵니다. 오늘 친구가 한 말, 내일 있을 발표, 이유를 모르겠는 답답함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이 정말 목이 말라서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아이도 자기가 왜 자꾸 부르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다만 혼자 있기가 조금 버거운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보실 것이 있습니다. 미루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늘었다면 그 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짚어 보시면 좋습니다. 반이 바뀌었거나, 자리가 바뀌었거나, 친한 친구가 다른 반이 되었거나 하는 일들입니다. 아이는 그런 변화를 낮에 말하지 않습니다. 말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낮에는 그 생각을 할 틈이 없어서입니다.
이렇게 보면 "또 시작이네"가 "오늘 뭔가 있었나" 쪽으로 옮겨 갑니다. 그 한 칸의 차이가 그 밤의 공기를 바꿉니다.
Q. 그럼 규칙을 정하면 되나요?
규칙은 필요합니다. 다만 규칙만으로는 잘 안 됩니다.
"물은 눕기 전에 한 번만", "화장실은 불 끄기 전에"를 정해 두면 실랑이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규칙이 막는 것은 요청의 형식이지 그 아래에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물길을 막으면 다른 데서 새듯이, 물이 막히면 배가 아파 오고 배가 막히면 그냥 엄마를 부릅니다.
그래서 규칙과 함께 자리를 하나 만들어 두시면 좋습니다. 불을 끄기 전에 짧게 앉아 있는 시간입니다. 길 필요가 없어서 삼 분이면 됩니다. 묻는 말도 하나면 됩니다. "오늘 어땠어?"
아이가 "몰라" 하고 말아도 괜찮습니다. 대답을 받아 내는 시간이 아니라 혼자가 되기 전에 한 번 들르는 자리를 만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생기면 불 끈 뒤의 호출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리 들렀으니까요.
Q. 무섭다고 합니다. 어디까지 받아 줘야 하나요?
이 대목에서 부모가 가장 많이 하시는 말이 "무서울 게 뭐가 있어"입니다. 사실을 말한 것이고, 아이를 안심시키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이 말은 무섭지 않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느끼는 것이 틀렸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다음부터 무섭다고 말하지 않고 다른 것을 말하게 됩니다. 배가 아프다거나 목이 마르다고요. 우리가 받기 쉬운 형태로 바꿔서 가져오는 것입니다.
받아 주는 것과 다 들어주는 것은 다릅니다. 받아 준다는 것은 "그렇구나, 어두운 게 싫구나" 하고 그 마음에 이름을 붙여 주는 일까지입니다. 그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같이 정하면 됩니다. 문을 조금 열어 둘지, 작은 불을 켜 둘지, 인형을 옆에 둘지요.
여기서 한 가지만 덧붙이면, 아이가 고른 방법이 어른 눈에 사소해 보여도 그대로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 방법이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골랐다는 사실이 아이를 덜 무섭게 합니다.
Q. 솔직히 저도 지쳐서 화를 냅니다
그 시간이 부모에게 어떤 시간인지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루 중 마지막 시간이고, 그날 못 한 일이 아직 남아 있고, 체력은 바닥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네 번째 호출을 들으면 목소리가 올라갑니다.
그건 인내심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참을성에는 양이 있고, 그 시간에는 대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순간의 자신을 나무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화를 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은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한 줄이면 됩니다. "어젯밤에 엄마가 소리 질렀지. 엄마가 피곤해서 그랬어." 아이가 알아야 할 것은 부모가 완벽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른도 자기 상태를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권해 드립니다. 그 실랑이가 매일 삼십 분씩이라면, 잠자리 시간을 삼십 분 앞당겨 보십시오. 아이를 더 일찍 재우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삼십 분의 여유를 주려는 것입니다. 같은 일이 벌어져도 아홉 시에 겪는 것과 열 시 반에 겪는 것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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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집에서 반복되는 모습이 있습니다. 부모는 그 삼십 분을 없애려 하고, 아이는 그 삼십 분을 지키려 합니다. 서로 반대쪽으로 당기니 매일 저녁 같은 자리에서 부딪힙니다. 그런데 이 시간을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짧게 옮겨 놓을 것으로 보면 길이 하나 생깁니다. 불 끈 뒤의 삼십 분을 불 끄기 전의 삼 분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시점부터 부모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이 삼십 분이 사라집니다. 지금은 매일 저녁 힘든 시간이지만, 나중에는 아이가 하루를 꺼내 놓던 유일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부를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에 이것을 해 보시고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며칠 만에 바뀌는 일이 아니고, 어떤 날은 아이가 그냥 잠이 안 오는 날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방법을 찾는 것이라기보다 그 시간에 아이 옆에 한 번 앉는 것에 가깝습니다.
두 아이를 집에서 가르치며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까지 보내는 동안, 제가 가장 많이 놓쳤던 시간도 이 시간이었습니다. 낮에는 진도와 계획을 붙들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꺼낸 자리는 책상 앞이 아니라 거의 늘 불 끄기 직전이었습니다. 공부를 봐 준 시간보다 그 몇 분이 더 오래 남아 있습니다.
오늘 저녁 아이가 또 부른다면, 한 번만 문을 열고 들어가 보세요.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말고 잠깐 앉아 계셔도 됩니다. 그것만으로 끝나는 밤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오늘 하루도 끝까지 버텨 내신 부모님들께, 그 하루가 헛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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