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하는 아이를 봅니다. 몇 번 걸리다가, 줄을 내려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원래 이런 거 못해." 목소리에 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울 것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 같은 담담한 목소리입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마음에 걸립니다.
오늘은 아이가 자기를 깎아내리는 말을 할 때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그 말을 못 하게 막는 방법이 아니라, 그 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Q. 아이가 "나는 원래 못해"라고 말합니다. 그냥 넘어가도 될까요?
이 말을 들으면 부모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대개 바로 받아칩니다. "아니야, 너 잘하잖아." 좋은 마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이가 자기를 낮게 보는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대답을 들은 아이는 대부분 조용해집니다. 수긍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화가 닫힌 것에 가깝습니다. 아이가 방금 자기 마음을 하나 꺼내 놓았는데 그것이 틀렸다는 대답이 돌아온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볼 것은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아닙니다. 그 말이 지금 아이에게 무슨 일을 해 주고 있는가입니다. 아이가 "나는 원래 못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아이는 안전해집니다. 더 해 보지 않아도 되고, 실패해도 이미 예고한 일이 되고, 못해도 창피하지 않습니다. 미리 져 두면 지는 것이 덜 아픕니다.
즉 그 말은 자기 평가가 아니라 자기 보호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보면 "아니야, 잘하잖아"라는 말이 왜 통하지 않는지도 설명이 됩니다. 아이가 지금 필요한 것은 평가가 아니라 안전이고, 부모의 부정은 안전을 거둬 가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도 되느냐고 하면, 넘어가지는 않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고쳐 주려 하지 않고 한 번 되물어 보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아이가 대답을 못 해도 괜찮습니다. 질문이 남으면 아이 안에서 그 문장이 조금 흔들립니다.
Q. 그럼 칭찬을 많이 해 주면 되나요?
이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칭찬을 늘렸는데 아이가 더 시무룩해졌다는 이야기도 그만큼 많이 듣습니다.
까닭이 있습니다. 칭찬이 결과에 붙으면 아이는 그 결과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역시 우리 딸은 머리가 좋아"라는 말을 들은 아이는 다음에 틀렸을 때 머리가 나빠진 아이가 됩니다. 칭찬이 커질수록 떨어질 자리도 높아집니다.
그래서 칭찬을 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칭찬이 붙는 자리를 결과에서 과정으로 옮기는 것이 핵심입니다. "열 번 중에 세 번 넘었네"보다 "줄을 다시 집었네"가 그런 말입니다. 잘했다는 판정이 아니라, 우리가 본 것을 그대로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아이에게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칭찬의 양이 아니라 부모가 실패를 어떻게 대했는지입니다. 아이가 걸렸을 때 부모 얼굴이 먼저 굳으면, 칭찬을 백 번 해도 아이는 실패를 무서워하는 쪽으로 자랍니다. 반대로 걸린 순간에 부모가 평소 표정이면 아이는 그것을 큰일이 아닌 것으로 배웁니다.
아이는 우리 말보다 우리 표정을 먼저 읽습니다. 그건 우리가 아이였을 때도 그랬습니다.
Q. 어디까지가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디부터 살펴봐야 하나요?
아이가 자기를 낮춰 말하는 일 자체는 흔합니다. 특히 또래와 자기를 견주기 시작하는 시기에는 더 자주 나옵니다. 그건 자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해서, 발달의 한 자리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몇 가지가 겹치면 조금 더 들여다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제가 부모님들께 말씀드리는 기준은 셋입니다.
첫째, 범위가 넓어지는 경우입니다. "줄넘기를 못해"에서 "나는 운동을 못해"로, 다시 "나는 뭘 해도 안 돼"로 넓어지면 그건 한 가지 일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자기 전체에 대한 말이 되어 갑니다.
둘째,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하는 경우입니다. 해 보고 나서 하는 말과, 시작도 전에 하는 말은 다릅니다. 뒤쪽이 잦아지면 아이가 시도 자체를 줄이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셋째, 잘한 날에도 그 말이 나오는 경우입니다. 결과가 좋았는데도 "운이 좋았어", "쉬운 거였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상황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이미 자리를 잡은 문장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셋이 몇 주 이상 이어지면 담임 선생님께 학교에서의 모습을 여쭤 보시면 좋겠습니다. 집에서만 그런지, 밖에서도 그런지가 다르고, 그 차이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를 알려 줍니다. 여쭙는 것이 유난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Q. 제가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떡하죠?
이 질문을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화가 난 김에 "너는 왜 늘 그러니" 같은 말을 했고, 아이가 그 말을 그대로 쓰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모의 말 한 번이 아이의 자기 인식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간단하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말을 후회하는 마음은 부모로서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후회를 스스로를 벌하는 데 쓰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실제로 있습니다. 지난 말을 취소하는 것보다, 그 말을 본 아이 앞에서 한 번 물러서는 것이 더 크게 남습니다. "엄마가 지난번에 늘 그렇다고 했잖아. 그건 엄마가 급해서 한 말이야. 사실이 아니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는 부모가 완전한 사람인 것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틀렸을 때 어떻게 하는지에서 배웁니다. 그래서 이 대화는 사과이기도 하지만, 아이에게는 "사람은 자기 말을 고칠 수 있다"를 보여 주는 장면이 됩니다. 자기를 깎아내리는 문장을 고쳐야 하는 아이에게 그건 꽤 쓸모 있는 본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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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집에서 반복되는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못해"라고 할 때 부모가 그 말을 지우려고 애쓰는 동안, 정작 아이는 그 말을 몇 달째 혼자 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것을 처음 들은 날이 아이에게는 처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말이 나왔을 때 급하게 고치지 않고 한 번 되물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그 문장을 혼자 들고 있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었을 때 부모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줄어든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가 자기를 낮춰 말할 때 우리는 그 말을 반박할 근거를 찾느라 바빠집니다. 지난번에 잘한 일, 작년에 받은 상, 선생님이 한 칭찬을 꺼내 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 목록을 듣고도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아이가 기다리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 옆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근거를 모으지 않아도 되니, 그만큼 부모도 덜 지칩니다.
한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고 지난 대화를 되짚어 보게 되실 수 있습니다. 그 되짚음이 "내가 잘못 키웠다"로 가면 이 글은 제 몫을 못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알던 만큼 했습니다. 알게 된 것은 지금부터 쓰면 됩니다.
두 아이를 집에서 가르치며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까지 보내는 동안, 제가 가장 오래 붙들었던 것도 점수가 아니라 이 자리였습니다. 아이가 자기를 어떻게 말하는지가 그다음 해의 공부를 정한다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일보다, 못하는 날에도 자기를 버리지 않는 아이로 함께 서는 일이 훨씬 오래 걸리고 훨씬 값진 일이었습니다.
오늘 아이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다면, 고쳐 주기 전에 한 번만 이렇게 물어 주세요. "지금 어떤 마음이야?" 그 질문 하나가 오늘 저녁 집 공기를 조금 바꿉니다. 그리고 그 공기를 만드는 사람이 부모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지냅니다.
오늘도 애쓰고 계신 부모님들께, 그 애쓰는 마음이 이미 아이에게 닿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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